Seth Godin
재인
★★★★☆
드넓은 초원을 달리고 있다. 초원에는 수백마리의 소떼가 풀을 뜯고 있었다. 동화에서나 나옴직한 멋진 광경이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여전히 별반 다를 게 없이 소떼가 계속 풀을 뜯는 광경뿐이었다. 이제 이 광경은 흥미롭지 않고 지루해졌다. 만약, 여기에 보랏빛 소가 한 마리 나타난다면?
일관되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마케팅에 있어 자신의 제품을 보랏빛 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난한 수준의 품질에 무난한 수준의 광고, 홍보 전략을 취해서는 결코 ‘리마커블’ 해질 수 없다. 저자의 주장을 담은 슬로건 ‘Don’t Be Boring’, ‘Safe Is Risky’, ‘Design Rules Now’, ‘Very Good Is Bad’에서 볼 수 있듯이 리마커블한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한 부분에서라도 남들이 갖지 못한 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리마커블 마케팅이 필요한 것은 전통적인 TV-산업 복합체 구조가 무너지고 필요한 물건을 더 이상 찾아 다니지 않는 탈소비형 소비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천문학적 액수를 쏟아 부은,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는 무의미하다. 오타쿠적 기질을 가진 열성적 전파자 집단 (스니저)을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입소문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조성해 주어야 한다. 일반적인, 대다수의 소비자를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특정 틈새 집단에서 화젯거리가 되고 추천거리가 될 만한 리마커블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들을 실제 이 책의 마케팅에 적용했고, 그것이 멋지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리마커블하게 만들기 위해 저자는 정식 출판되기 이전에 스니저 기질이 강한 독자들을 위해 책을 보랏빛 우유 팩에 담아 보냈고, 12권을 한 팩으로 묶어 60달러에 판매하는 마케팅을 택했다. 이렇듯, 제목처럼 보랏빛 소가 된 이 책은 출간되기 이전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진입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리마커블한 마케팅이란 바로 이처럼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쉽게 접하기는 어려운 쪽에 초점을 두는 마케팅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무난한 제품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웬만한 물건들은 모두 가지고 있고, 선택의 폭이 넓은 상품들에 대해 일일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안전한 길이 위험한 길이 되고, ‘아주 좋은’ 것은 결코 리마커블해 질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수’해야만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제품이 스니저 집단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에 초점을 두면서 다른 점들은 경쟁 제품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그렇기에 못생긴 차라는 인식이 깊었던 볼보가 성공했고, 진한 술과 매우 독한 담배가 잘 팔리며, 욕쟁이 아줌마의 허름한 가게가 발디딜 틈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아주 좋은’ 수준의 성적과 인간 관계 등등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는 결코 리마커블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어쩌면 나처럼 이것저것 두루두루 잘 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Generalist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어쩌면, Generalist가 되려면 완전히 Generalist가 되어야 한다는 뜻일지 모른다. 어정쩡하게 이런저런 얘기 다 알아들을 정도만 되어서는 부족하고. 아니면 반대로 한 분야에 정통한 Specialist가 되든가.
난 너무 능력에 비해 욕심이 많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다 잘하지는 않아도 좋을거다. 문서작업을 그리 잘하지는 않아도 괜찮고, PT 자료를 만드는 데에도 뛰어나지 않아도 될 거다. 이것 때문에 오히려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포지셔닝’ 책에서 그토록 자신의 이론을 자아계발 및 성공론에 적용시켜도 와닿지 않았는데, 복잡한 군더더기 없이 straight-forward하게 단순명료한 주장을 반복하는 이 책에서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저자가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거다. 저자가 impact를, 후폭풍을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도, 의미있지도 않다. 다만 저자는 impact와 후폭풍이 생길 여지가 많은 책을 써낸 것 뿐이다. 나머지는 독자들이 채워나가는 것이고. 그렇기에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는 선생보다는 곰곰히 생각한 뒤에 깨달음을 얻게 하는 선생이 뛰어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