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Digital + Analog) 한국인이 이끄는 첨단정보사회, 그 미래를 읽는 키워드
디지털 사회라고 하는 요즈음 들어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디지로그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화를 뜻하는 합성어이고,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해 온 이어령은 디지로그를 통해 한국이 후기정보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우리의 전통 문화의 뛰어난 아날로그적 감성과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서 디지털 사회로의 빠른 전환을 이루고 있는 현대 한국 사회의 디지털 혁명이 어우러지면서 첨단정보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모든 것을 먹는 것과 연관 짓는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따끈따끈한 뉴스’, ‘한솥밥을 먹는다’ 등의 일상생활의 표현과 시루떡 돌리기를 통한 정보의 유통, 젓가락 문화 등에 대해 가벼운 듯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통찰을 던진다. 공급자 중심의, 알아서 덜고 썰어야 하는 칼과 포크의 문화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한입에 집어먹을 수 있는 젓가락 문화. 쌍으로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젓가락과 휴대폰을 위시한 네트워크와의 묘한 유사성. 정과 믿음, 상호성을 내포한 한국의 젓가락 문화는 IT를 RT(Relation Technology)로 변혁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술(컴퓨터), 인간과 자연을 조화시키고 융화시키는 힘이 디지로그에서 나온다.
‘디지로그’는 중앙일보에 새해기념으로 연재되어 오던 시리즈인데, 아버지의 권유로 토막토막 읽다가 간행본으로 나오면서 읽게 되었다. 우선 책을 읽고 난 인상은, ‘간단한 듯 보이지만 엄청난 식견이 담겨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류의 에세이를 원체 좋아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컴퓨터와 사람을 엮는 이러한 식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이 던져준 짜릿함은 일종의 역할 모델과도 같았다. 이 책은 내가 앞으로 컴퓨터와 사람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이를 융화시키려는 노력 등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쉴새 없이 다양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생활 속에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와 관례 등을 자연스럽게 디지털 문화와 엮어 나가는 통찰력은 정말 놀라웠다. 이러한 식견을 갖추기 위해서 저자가 들였을 평생의 노력과 탐구의 양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본문이 아닌 인터뷰 형식으로 담겨 있는 대담 부분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애플의 iPod이 워크맨과 같은 아날로그적 환경과 냅스터, 소리바다로 대표되는 디지털 환경을 뛰어넘은 디지로그 징후군의 예라고 말한다. 또한 디지로그 마케팅은 모두 디자인 의식과 감각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인간(아날로그)과 컴퓨터(디지털)가 만나는 접속 부분, 즉 인터페이스에 있어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감성마케팅, 디자인마케팅과 더불어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