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 한쪽 귀퉁이에 조심스레 적어놓은 글. 약간 다듬었다.
역시 펜으로 쓰는 것과 키보드로 치는 것에는 (생각의 흐름과 전개방식에 있어, 아직은) 차이가 있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지배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점점 더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서 컴퓨터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도 (언어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커질 것이다. 특히 공기처럼 언제, 어느 곳에나 컴퓨팅 환경이 갖추어지는 ubiquitous 환경에서는 더더욱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다.
훌륭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은 그만큼 사고와 행동에 있어 ‘정립되어 있음 (confidence)’을 의미한다. 역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컴퓨터를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보다 잘 활용하는 것 또한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의 우리에게 있어 ‘정립되어 있음’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언어를 익혀가는 것과는 달리 컴퓨터를 후천적으로 학습을 통해 익힌다. 우려되는 것은 컴퓨터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가는 이 시대에 컴퓨터 활용 능력에 따라 인간의 능력 자체가 영향을 받게 되는 상황이다. 문서작업에 있어의 속도나 복잡한 기능활용으로 인한 정보의 구성 능력이라든가, 웹 서핑을 통한 고급정보에의 접근과 수집 등에서는 이미 같은 조직 내에서도 개인간의 격차가 크다.
컴퓨터의 역할에 대한 나의 뚜렷한 신념은, 컴퓨터가 인간의 창조성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활동을 더욱 촉진하고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막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HCI에서 창조성에 관한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인간의 창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컴퓨터와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고 디자인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