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런 공연이 기획된다는 것을 알고 일단 놀랐고, 꼭 가리라 결심했던 공연. 몇 달 전 짧지만 강한 임팩트의 로고송으로 공연전부터 들뜨게 했던 그들이 왔다. (리얼그룹에서 노래를 만들어 자기 부분을 녹음하고 각국의 팀들에게 돌려서 믹싱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살짝 올려봤다. 어차피 공개 음원이니 뭐^^;; 책 말고는 ‘review’라고 할만한걸 해본 적이 없는데 이 공연은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The Real Group: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아카펠라 그룹이 아닐까 싶은 이들. 한국에 부쩍 자주 온다. 내가 본 공연만 너댓번째 정도니까… 이번 공연에서는 단순한 참가팀이 아닌 디렉터의 역할을 해냈다.
Rajaton: 핀란드 출신의 이들. 단연코 이번 공연의 베스트였다.
M-Pact: 작년말 한국에 처음 와서 했던 쇼케이스를 관람하고는 꽤나 강한 인상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은 너무 캐주얼한 면 때문에 높은 평가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쨌건 나는 작년에 음반을 세 장이나 질러주셨다.
The Idea of North: TION 이 약자인 줄도 모르고, 그 동안 다른 팀인 줄 알았다. OTL. 알토 분, 내가 좋아하는 감미로운 소리를 가지고 계심 @.@
간단히 각 팀의 소개를 했고… 공연에 대한 평을 해보자면…
전반
우선 돈이 아깝지 않았다. 훌륭한 기획에 훌륭한 노래. 별로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굳이 잡자면 여태 봤던 리얼 그룹 공연 중 최악이었다는 것 정도.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덜 유명했던 다른 팀들은 한국에서의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을것 같다. 사실 M-Pact 와 같이 스타일이 분명한 팀이 리얼 그룹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인가 걱정도 많이 하고, 이 네 팀이 자신만의 스테이지가 아닌 ‘연합 무대’를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도 했는데, 모든 걱정은 무대를 통해 말끔히 해소되었다. 향간에 들리는 소문에는 공연전 닷새동안 피닉스 파크에서 연습했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올 수 있는 최상급의 블렌딩과 하모니를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역시 개개인의 역량이 탁월한 이들이 모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경외심만 가득.
기획
기획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단 팀 선정이 좋았다. 사실 The King’s Singers, The Swingle Singers, Take 6 등의 팀이 왔어도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충분히 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번 네 팀의 조합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만한 포스를 보여주었다. 또한 스테이지 배분이 적절했다. 어차피 한정된 시간 속에 각 팀의 주요 레퍼토리만 맛보기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어느 정도 각오를 했는데, 알게 모르게 팀들은 독립 스테이지에서 경쟁심을 느꼈는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그리고 마지막에 삽입된 연합 무대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이런 수준의 팀들이 한 무대에서 한 노래를 부르다니… M-Pact 가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노래가 다른 팀들의 레퍼토리에 없다보니 약간은 아쉽기도 했다만… 처음 기획할 때부터 ‘경쟁’을 철저히 배제한 것이 리얼 그룹의 방침이었다고 하는데, 각 팀의 뾰족한 색깔을 버리고 철저히 블렌딩 위주의 연합 무대를 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팀별로 한마디씩.
Rajaton. 이들을 가장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첫 곡 Dubbin’s Flowery Vale. 진정 최고의 무대였다. 들으면서 무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작머리 소프라노로 명명된 (누구에 의해? 물론 우리 일행에 의해=.=) 소프라노 분은 내가 본 아카펠라 싱어 중 최고 수준의 개인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주일째 넉놓고 계속 듣고 있는 Dubbin’s Flowery Vale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목소리는 저음-고음 jump를 할 때 조금의 불연속성도 없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건강하고 탄탄한 소리가 ‘시종일관’ 계속 된다는 것. 사람인가 싶을 정도. 결과적으로 Rajaton은 그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풍성함과 원초적인 발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풍성하고 빈틈이 없으면서 균형잡힌, 그러면서 어딘가 야성적이고 원초적인 느낌도 드는, 소리 본연에 충실한팀.
M-Pact. 들을 때마다 감탄사가 날 수밖에 없는 M-Pact의 Britt Quentin의 존재는 리스너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일이지만, 너무도 유니크한 목소리 때문에 팀 전체의 색깔이 너무도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있는것 같다. 관절을 짚어보고 싶을만큼 동작 또한 유니크한 우리 Britt. 감동적이었던 것 두 가지는 1) 연합 무대에서 어느팀 소프라노랑 같은 키로 노래 불렀을때… 2) 최고음을 낼 때 마이크를 허리 아래까지 내려주시는, 그러나 볼륨은 오히려 더 커지는 미스테리. 개인적으로 가장 닮고싶은 소리를 가졌던 베네주엘라 출신의 알토가 새로운 멤버로 교체되어 아쉬웠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팀이다 M-Pact.
TION. 네 명의 멤버로 이 정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특히 알토분, 소리가 너무 좋다. 역시 나는 조금 선굵은 여자 목소리를 좋아하는듯? 인상적이었던 곡은 Mas Que Nada (브라질 곡이었다. 오오) 앞부분에 여성파트가 두 음을 왔다갔다 하면서 들어오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Isn’t She Lovely는 제대로 한 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다같이’ 분위기로 만들어 버리는 덕분에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The Real Group. director 역할에 있어서는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역시 그들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무대에서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했다. 지나치게 자주 하는 한국공연에 대한 매너리즘 때문인지 노래의 긴장감이 자꾸 끊기는 느낌이었다. 마치 열린 음악회에서 유명 가수가 자신의 옛날 히트곡을 부르는데 일부러 한박자씩 늦게 들어가고 마음대로 추임새 넣어서 김 새고 이상해지는 느낌과 비슷하달까. 무언가 더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인데, 일단 이러한 공연을 가능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려나 보다. 새로운 앨범을 준비할 때가 된 걸 수도 있고^^;;
총평
이런 공연은 매년 해주어야 한다. 일반인에게는 아카펠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저변을 확대하는 한편 아카펠라 싱어들에게는 신선한 자극과 ‘노래 부르고 싶어 죽겠다’ 전염병을 던져주니 말이다. 키씽 공연이나 생쇼 등 우리나라 아카펠라 공연을 보면서 늘 느껴왔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공연의 팀들과 당당히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수준의 팀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