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저 / 김영사
미루고미루다 정리해야 할 책이 쌓여있는 것을 도저히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무작정 쓰기 시작.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가끔 받곤 한다. (면접 등등에서) 그 때 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을 들곤 했는데, 고등학교 때 국사 시간에 배운 것 이상으로는 아는 것이 없어 죄책감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던 차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발견해서 대뜸 질렀다.
처절했다. 안타까웠다. 화가났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당파싸움이 극에 달해 나라의 안녕보다는 당의 안녕을 위해 처절한 생존싸움을 벌이던 때.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그 때보다 과연 나은가? 새로운 시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힘에 부쳤던 정조와 그가 신임하던 정약용. 그들은 시대를 내다보는 식견과 의지가 있었으나 변화를 추진할만한 힘과 ‘아군’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조의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정약용을 필두로 한 남인 지식인들이 대거 등용되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정약용이 가장 빛이 났던 때는 그가 정조임금 아래에서 능력을 펼쳐보이던 관료시절보다는 기나긴 귀양생활 동안이었다. 귀양시절의 정약용은 세속을 초월하고 시대를 아우르는 학문적 깊이와 더불어 현실과 백성을 품는 실학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정약용이라는 인물을 통해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의 전형
사대부의 몰락을 예상하고, 경영, 기기제작 등 전문성을 갖춘 인재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를 주장했다. 지역, 혈연, 계급에 의한 인재의 차별적 등용의 폐단을 지적했다. - Theory와 Practice를 겸비한 인재
대표적인 실학자답게 탁상공론과 관념적 사고를 거부하고 백성의 실질적 권익 제공을 위한 노력을 했다. 강제부역이 아닌 성과에 따른 보상을 제안한 것이라든가 양계, 농사일 등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 다양한 분야에 통달 – T자형 인재
내가 좋아하는 말. T자형 인재. 자신의 전문분야에서의 깊이 (세로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지식 (가로축)을 겸비한 인재. 당시 대세라 할 수 있는 사변적인 주자학에 안주하지 않고 유교의 근본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면서도 외국의 과학기술, 불교, 서학(천주교)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서학에의 인연은 기폭제가 되어 정약용의 인생에 큰 변화를 초래한다. 정약용은 진정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 진정한 학자의 모습
현실의 좌절을 딛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학문을 완성시켜나갔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며,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인정한 것도 아니다’ – 두 아들에게 부친다(1802년 12월)
나에게 적용할 점: 수원 화성 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