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공부는 다른 것인가?
각각의 정의와 의미 이런 걸 따지기보다 그냥 피부로 느껴지는 수준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 내가 느끼기에 연구는 질문을 만들고 어떤 방법을 택해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이라면, 공부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역시 어떤 방법을 택해 풀어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연구가 질문에 초점을 둔다면 (보다 학문적, 실용적으로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공부는 방법론에 초점을 두는 것 아닐까. (A라는 문제를 푸는 방법을 기존의 지식과 그 응용을 통해 터득하는 것)
그럼 그 다음 질문. 공부를 잘 하면 연구를 잘 하는 것일까?
바보같은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유학을 와서 꽤나 진지하게 많이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흔히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학점이 좋고 시험을 잘보고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연구를 잘한다고 하면 좋은 주제를 잡고 논문을 잘/많이 쓰고 이런 것들이 생각나고.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이 보통 좋은 학교에 많이 가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대학들이 연구 경험이 많이 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연구를 잘 할 것 같은’ 학생들을 뽑기 때문이다. 그리고 꽤 많은 경우 ‘연구를 잘 할 것 같은’의 기준은 학점, 시험점수와 같은 ‘공부’의 측정 방법으로 미루어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둘이 과연 그렇게 크게 상관있는걸까?
연구-질문, 공부-방법론이라는 좀 과격한 나의 단순화를 받아들인다면, 이 둘은 당연히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우선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지식과 스킬이 큰 도움이 된다. 아니, 지식과 스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웹상의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다양한 연구 주제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연구를 진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웹’, ‘학습’, ‘정보’ 등의 키워드 각각에 대해 지식과 스킬이 중요해진다. 구체적인 방법론과 스킬을 알고 있으면 문제 또한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보다 뚜렷한 비전을 세울 수 있다. 이 예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지식, 학습의 과정과 필요 조건, 실질적인 웹기반 툴의 구현에 필요한 Javascript, AJAX, CSS 와 같은 다양한 지식과 스킬들이 중요한 툴박스가 된다. 즉, 이런 지식들을 갖추고 있으면 문제 풀기가 수월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더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서 보스를 깨는 데에 보다 수월해지는 느낌?
또한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연구 마인드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드넓은 지식의 바다 속에 내가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배워야겠다는 방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 호기심을 따라 흘러가듯이 습득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많은 경우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 것또한 사실이다. 학문의 즐거움을 깨달은 달인의 수준에 못미쳤다면 말이다. 나 또한 이 경지와는 아직 격차가 있는듯 ㅠㅠ 어쨌든 보다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있으면 뭘 공부해야 하는지 분명해지는 것 같다. 어떤 보스를 무찔러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가 분명하면 어떤 아이템을 습득해야 하는가가 분명해 지는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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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공부를 소홀히 한 것 같다. 재미있는 연구 프로젝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온 석사과정이었다. 한편으로는 공부가 부족해서, 내가 가진 툴박스의 빈약함이 늘 안타까웠다. 없는 아이템들의 조합으로 강적을 상대하려니 늘 분주했고 힘에 부쳤다. 그래도 얻은 큰 수확은 뭘 공부해야 하는지 알겠다는 것. 나의 지식포트폴리오에 채워야 할 것들과 채웠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좀더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늘 연구의 키워드로 삼는 ‘창의성’, ‘도구’, ‘컨텍스트’와 같은 큼지막한 주제들에 다가가는 길을 뚫고있는 과정인 것도 같다.
이제 내가 가진 조금의 숨돌릴 여유와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을 보다 현명하게 활용해서, 필요한 것들을 좀더 습득해야겠다. 연구모드와 공부모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 레벨업 노가다가 아니라, 와신상담의 자세로 복수의 칼을 가는 외로운 무사! 연구경험은 공부가 그 의미를 더해가는 중요한 기폭제였고, 이렇게 얻는 지식은 또다시 좋은 연구로 연결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