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꽤나 진부하다. 교훈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나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아마도 ‘왜 당신이 즐기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즐기는 사람과 경쟁하는가, 지금이라도 당신이 진정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매진하라’고 ‘정답’을 제시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정답도 있는 문제를 가지고 계속 고민해야 하는걸까.
약간의 타고난 재능이나 좋은 환경 등을 통해 즐기는 법을 조금은 쉽게 배울 수도 있겠다. 남들보다 적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잘 나오면 기분이 좋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 선순환이 그렇다. 좋은 환경을 통해 제대로 기초부터 쌓아나가거나 체계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연습할 수 있다면 역시 더 열심히 하고 좋아하게 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그렇지만 결코 이런 조건들이 진정 즐기는 데에 필요조건일 수는 없다. 오히려 무언가가 부족하고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말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멋진 사례들이 주위엔 너무나 많지 않은가.
무언가를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고 자꾸 싶어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 잘하는 것과도 꼭 같지 않다. 예를 들어 노래 하는 것을 정말 즐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사람이 반드시 잘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런 경우 물론 좋은 피드백과 환경의 도움으로 빠르게 실력이 늘 수는 있을 거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건, 즐길 수 없으면 최고의 경지에는 오를 수 없다는 것.
요즘 매주 꼼꼼히 챙겨보는 나가수를 봐도 그렇다. 최고수준의 가수들 사이의 경쟁이라 신들의 경연이라고까지 표현을 하지만 그 안에서도 분명 완전히 즐기면서 만들어내는 무대와 그렇지 않은 무대는 차이가 난다. 단순히 연습량이나 선곡, 편곡 운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무대 위에서의 즐기는 모습 자체가 가져다주는 ‘진정성’이 분명 있다. 노래를, 음악을 잘 몰라도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비언어적으로 머릿속에, 가슴속에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듯 ‘즐김’의 힘은 대단하고 실력과는 또 다른 차원의 느낌이 있다.
내 분야에서 잘 하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아니, 그런데 생각보다 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진정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자체가 사실 쉽지 않다. 세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일들을 다 해보고 결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남들이 이미 걸어온 몇가지 모범사례들을 보면서 자신을 대입시켜보는 샘플링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좀더 창의적인 샘플링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 인공지능 분야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Marvin Minsky 교수님이 얘기한 적이 있다. 자신이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주위에 있던 똑똑한 친구들과 경쟁해서는 자신이 원래 생각하고 있던 물리학과 수학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분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라. 그리고 꾸준히 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그 분야의 선구자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라는 지혜를 이야기했다.
또 즐기는 것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언뜻 정말 좋아하는 줄 알고 시작했는데 금세 질려버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첫눈에 빠지는 사랑 같은 강렬하고 본능적인 끌림도 있겠지만, 그 분야를 더 알게되고 경험이 쌓이면서 새롭게 깨달아 가는 즐거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과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투자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인정하자,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이 세상 모든 일중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또 인정하자,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하기까지 내가 탐색해온 노력과 투자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고, 헛되지도 않았다. 내 나름의 시야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해 나는 행복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책임을 다할 스스로에 대한 의무가 있다.
결국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즐김과 더불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꾸준히 성찰하고 되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해가며 경험과 노력으로 차분히 쌓아가는 즐김의 지혜가 아닐까. 전자의 부재를 의심하기 전에 후자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충실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