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쓰는 글. 그냥 요즘, 오늘의 나를 스냅샷처럼 찍어서 담담히 적어보고 싶었다.
시간은 잘 가고, 세상도 정신없이 잘 돌아간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났고, 서울시장 선거도 끝났고, 나가수는 나의 고교시절 우상 김경호님이 선전해주고 계시고, 슈스케도 울랄라세션 보는 감동에 늘 뭉클하다. tech 세상은 여전히 애플과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뜨겁고, 주위는 엄청난 벤처 열기로 부글부글하다. 여름 인턴은 정신없이 끝나 나는 어느새 보스턴에 돌아왔고, 올해로 세번째였던 UIST 학회는 무난히 지나갔고, 나는 여전히 nobody 인것 같고;; 분산 알고리즘 수업은 태어나서 들은 수업 중 단연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며 나를 괴롭히고 있다.
박사 2년차는 1년차만큼 설레거나 의지로 가득하지는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지치거나 걱정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말그대로 그냥저냥 때우며 보내기 쉬운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졸업이나 논문에 대한 압박이 큰 것도 아니고 환경이나 랩 적응은 어느 정도 되었고. 일주일에 2-3일 잠 제대로 못자는 거야 마찬가지지만, 그것도 이제는 만성이 되어 긴장감보다는 한숨과 만성피로 속에 지샌달까. 연구할 시간은 늘 부족하고 수업 듣는 시간과 숙제하는 시간은 괴롭지만 일생 ‘마지막으로 들어야하는 수업’일수 있기에 어쨌건 버텨야 한다는 오기로 버틴다. 쉬는 시간에는 사람들 가끔 만나거나 모임을 나가고, 조금은 더 새로운 사람들을 알고싶어 소심하게 기회들을 챙긴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멍하니 쇼프로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깨작깨작 교과서 좀 들여다 보고, 페북/트위터 만지작 거리고, 가끔 기숙사 건물 1층에서 운동도.
제목 그래도 ‘웅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 웅크리고 움츠리고 있으면서 세상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편안함과 안전함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마냥 즐겁지는 않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나의 인생 목표 중 하나라면,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내가 진정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혹은 꿈과 비전을 생각했을 때 해야 할 일들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생각해보면 답답하다. 이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알고리즘 교과서를 읽을 때나 대체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 싶은 미적지근한 논문들을 읽을 때면 학교를 당장 뛰쳐 나가 나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싶기도 하고. 벤처라도 해볼까 싶다가도 비전없이 근시안적으로 뛰어드는 one of them이 될까 두렵고. 연구를 하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당장이라도 나올것만 같다가도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내 결과물이 부끄러워 슬프다.
웅크리고 있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맞는 때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꼭 지금은 아닐 수 있으므로. 그 때를 위해 지금은 더욱 탄탄히 준비를 하고 내공을 키워야 할 때라고. 다들 현재를 보느라 바쁠 때 한발짝 물러서 있는 나는 그 다음이 뭘까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그게 내 연구가,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더 큰 의미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