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 졸업을 앞두고,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평생을, 아니 적어도 당장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 외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내가 이렇게 학교를 좋아했나 새삼 놀라게 된다.
최근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일은 research statement 를 쓰는 것이다.
그동안 파편으로 해오던 연구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는 과정…이기는 한데,
그렇게 아름답다기보다는 어떻게든 이 파편들에 맞는 틀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가까운 느낌이다.
문득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게 된다.
그때 생각하던 것과 실제로 한 연구는 차이도 많이 나고
그때는 도무지 예측조차 할 수 없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어쨌든 그때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나 스스로 우쭐해져본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스스로 연구를 할 수 있기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
이번 여름, 교수님 없이 여기저기서 혼자서 이런 저런 연구를 벌여놓고 교수님게 고백했을 때
혼날 걸 각오했지만, “아, 이제는 니가 졸업할 때가 된 모양이다” 말씀하신 게 계속 머리에 맴돈다.
그러면서 또한 내가 얼마나 복받은 환경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는 이메일 하나의 거리에 언제나 있고,
함께 협력 연구를 해나갈 사람들도 늘 풍부했으며,
돈걱정, 주제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그냥 하기만 하면 되는 환경에서
나는 지난 4년을 지내왔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권리처럼 느껴질 때쯤,
내년 가을부터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연구를 할 수 있을까조차 불분명하다고 생각하니
부모님을 떠나 처음 자취를 하는 마냥 셀렘 반 불안함 반이다.
엊그제 문득 떠오른 것 –
좋은 환경의 척도란,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환경 탓이 아니라 내 탓을 하는 정도와 비례하는 것 아닐까.
되돌아 보면 박사 과정 내내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일이 잘 되지 않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모든 어려움과 고생은 온전히 나 자신의 무지와 실력 부족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나는 참 좋은 환경에서 맘 편하게 연구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이것이 단순히 MIT 라는 울타리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내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온갖 잡일을 챙겨 주었던 교수님이 계셨고,
건설적인 피드백과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랩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새롭게 연구를 시작할 곳에서 (그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일을 할 사람들이 환경 탓을 하지 않을 수 있을만큼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다짐을 해본다.
이 모든 게 가능하려면 일단 졸업을 해야 하고,
그 전에 새로운 곳이 나를 원해야 하고,
그 전에 statement 를 고쳐야 한다.
그러려면 이 글을 그만 써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