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데드라인이 다가올 때는 내 연구에 내가 질리는 게 가장 무섭다. 엄청난 무언가를 향해 쭉쭉 뻗어나가고 있다기보다는, 무서우리만큼 따끔한 피드백과 토론을 통해 고통 속에 한발한발 다져 나가는 느낌이다. 이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여전히 내가 그 과정을 즐기고 있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편으로는 폭풍 속에 휩쓸려 가고 있는 배를 조종하는 기관사 같기도 하다. 분명 내가 키를 잡고 있기는 한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이 폭풍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저 내가 여태까지 배워서 또 주워들어 알고 있는 좁은 지식으로 어렴풋이 예측만 할뿐. 당장 키를 놓칠 수 없고 코앞의 장애물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서 전체 정황을 보기가 어렵다. 아니, 그러기가 무섭다. 이걸 위에서 바라보는 교수님과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외침이 간간이 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 씨름하며 이겨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약 20% 정도의 확률로 이 폭풍을 벗어나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나머지 경우는 배가 아예 난파되거나, 기약 없는 계속되는 항해를 하거나, 엉뚱한 곳에 도착하기도 한다. 무사히 도착한 사람들은 다음 항해의 목적지의 일정을 준비하며 주저없이 나가려는 사람들과 잠시동안의 행복에 만족하려는 사람들로 나뉜다. 결국에는 어차피 길을 나서게 되어 있지만. 그렇게 끝없는 (이라고 학생은 느끼지만 따지고 보면 몇번 안된다) 항해를 계속 하고 나면, 이전에 이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지식”이라는 결과물을 얻게 된다.
물론 이 지식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것일 확률은 매우매우 낮다. 그래도 이런 지식의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이전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명확하게 밝혀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더더욱 keep pushing 해야 한다.
Images from The Illustrated Guide to a Ph.D. by Matt Might,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 2.5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