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개월의 유학생활동안 느낀 것들

이제 9시간 정도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딱 1년만에 돌아가는 것인데 (10월에 잠깐 3박으로 다녀온 것 빼면..) 작년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하다. 박사를 지원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계속해서 조급함과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학교 지원도 완료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으니.. 그동안 나의 생각과 지식, 또 생활은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생각보다 나는 약하더라. 정신력, 인내심, 지구력 이런 걸로는 어디가서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1년 3개월의 유학생활동안 몸과 마음이 꽤나 피폐해진것 같다. 역시나 불안했던 스테이터스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인드컨트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늘 만성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공부만 한건 또 아니다. 불안함 때문인지 오히려 더 집중이 어려웠고 힘든 일들도 있고 해서 방황도 꽤나 한 것 같다. 좀더 운동, 먹거리, 취미, 주위환경 등에 신경쓰면서 ‘생활’을 유지해가며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미국은 큰 물이더라.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것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 연구에서는 기라성같은 학자들이 서로서로 교류하면서 지식의 최첨단을 넓혀나가는 것을 보았고, 수업에서는 뜨거운 벤처정신과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분위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연구환경과 수업의 질 등에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월등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대학들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많은 요소들이 서로 순영향을 주면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영어는 어렵더라. 중학교 3년간의 영어가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대학원 수준의 영어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ㅠㅠ 특히 글쓰기와 표현이 어려웠다. 중요성을 거의 모르고 살았던 ‘the’ 를 써야하는 경우 판단하기..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설명하기에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몰라서 적당히 비슷하게 표현해서 낭패보기.. 등등 좀 슬펐다. 논문이나 리포트를 쓰는 과정을 통해 다행히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한 뜻을 살펴가면서 좀더 세밀한 의미전달을 하는 훈련, 그리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간결하고 경제적으로 글 쓰는 훈련을 조금은 할 수 있었다. 글쓰는 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듯.

 

지도교수는 잘 만나야겠더라. 아무래도 도제방식처럼 연구를 배우는 곳이 대학원이다보니 교수로부터 꽤 많이 영향을 받는다. 직접적인 것으로는 연구방향, 스타일에서부터 논문쓰는 방법, 연구 스케줄 관리, 나아가서는 생활습관이나 말하고 글쓰는 방식까지. 다행히 내가 만난 교수님은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 주위에 워낙 교수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더라.. 특히 스탠포드 CS 는 유난히 쉽지 않은 교수들이 많은듯.

 

뭘 하고싶은지 알게 되었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원래 꿈이어서, 하다보니 재밌어서, 다른 것 탐색하기가 두려워서, 여태까지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등등.. 유학을 시작하면서 연구가 내 길이 아니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석사를 먼저 하기로 한 결정도 그래서였다. 회사는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었고 나의 적성과 재능을 발휘하기에 꽤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좀더 나만의 전문성과 새로움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고, 그걸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곳은 대학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맞는 것 같다. 연구는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도구이고, 평생을 두고 익혀가면서 즐겨볼만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를 해보았다. 이제 걸음마를 떼는 단계 정도지만, 제대로 된 연구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다행히 처음 하게된 연구가 나의 관심사와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었고, 앞으로의 연구목표와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교수의 눈에 띄려 애썼고, 제대로 연구를 하게 되면서는 안주하게 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