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초 안에 내 연구 설명하기

바로 전 포스트에서는 학회에 대한 기본적인 감상을 적었는데, 이제 내가 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번 UIST 학회에서는 포스터, 데모 발표하는 사람들에게 40초의 시간을 주고 자신의 연구를 ‘홍보’ 하는 40-second madness 라는 이벤트를 했다.

원래 짧은 게 더 어렵다고, 결과적으로 이 40초 짜리 발표를 준비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을 들였다. 아무리 짧고 휙휙 지나가는 발표라도 2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하려니 여러가지 압박이 컸는데, 40초 동안 사람들한테 보여줄 시각 자료와 말할 스크립트를 준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Scott 은 정말 세심하게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나는 교수님이 이런 것까지 신경써줄까 싶었는데, 이게 웬걸, 발표자료와 스크립트를 합쳐서 열댓번은 직접 수정을 해주었다. 이 사람 참 완벽주의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이렇게 내 연구에 대해 내가 말하는 한마디, 보여주는 그림 하나에 완벽을 기하지 않고서는 좋은 연구자가 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는, 어떤 결과물이라도 피드백과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스탠포드에 와서, 또 그 중에서도 HCI group 에서 연구하면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가장 많이 신경쓰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다. 마치 디자인이 그러하듯, iterative feedback 을 통해 나만의 다소 치우쳐 있고 위태위태한 버전은 점점 견고하고 설득력있게 변신해 나간다.

시각 자료는 처음에 비디오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툴에 대한 설명이다 보니 데모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랩에서 사람들에게 리허설을 하면서 느낀 것은,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힘들다는 것이다. 시간의 싱크를 맞추는 것이나 현지의 비디오 상황을 고려하는 것 등 위험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파워포인트로 대체했다. 이 결정은 정말 대박이었는데, 발표자료를 모두 모아서 돌리던 행사장의 노트북이 비디오만 나오면 엄청 버벅거리면서 소리는 깨지고 비디오는 엉망이 되어서 나왔다. 대략 1/3 정도의 발표들이 이렇게 묻혀버렸다. 내 것이 그 중 하나였으면 좀 많이 안타까웠들듯.

스크립트는 화면에 맞게 초안을 잡고 마찬가지로 여러번 교정을 통해 다듬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재밌었던 것은 내용과 흥미 유발 등의 미묘한 수위를 조절하는 것. 역시 힘든 것은 분위기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다. 40초라는 짧은 시간, 또 이벤트의 성격상 조금은 informal 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질문으로 시작했고, 또 Scott의 제안에 따라 약간의 유머코드도 넣었다. 정작 웃는 사람은 몇 없었는데, 본 사람들이 이해는 했을듯? 하고 위안삼고 있다.

이렇게 준비한 스크립트를 미친듯이 반복 학습해서 외우고 또 외웠다. 화면과 싱크가 맞도록 타이밍도 여러번 맞춰서 준비하고.. 몇초만 밀려도 굉장히 어색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돌발상황에 대비해 여러가지 속도와 pause 넣기 등을 나름 고려했다. 원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했는데, 교수님을 보니 이렇게 안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대망의 발표. 한 30명 정도의 사람이 참가했다. 한명씩 슥슥 빨리도 지나가고. 비디오 준비한 사람들의 대략 낭패인 상황을 보며 상대적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미안해요;; 그래도 준비를 열심히 한 탓인지 말 안 꼬이고 무사히 마쳤다. 휴우.. 교수님이 일단 대만족했다. 아아 감동… ‘beautifully delivered!’ 라며 엄지 손가락도 올려 보이고 뭐 이래저래 교수님이 좋아하셨으니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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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포스터 세션은 흥미로웠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내 연구에 가장 관심있어 할만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ㅠ.ㅠ 같이 갔던 란지타는 설정한 것도 아닌데 꼭 설정사진처럼 뒤돌아 서 있네 ㅡ_ㅡ 내 얼굴을 보니 너무 피곤에 쩔어서 좀 쉬게 해주고 싶은 정도… 빅토리아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이 생각만 든다. 좀 쉬자…. 얼굴이 영 안되어 보인다;; 아래가 발표했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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