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쓴 글과 같이 창의적 연구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엄정한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걸 잘 하는 것이 좋은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미국에 와서 가장 차이를 느끼고 또 내가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부분이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 때문인지 학부와 대학원의 차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요한 건 힘들다는 것, 또 큰 transition 이라는 것이다. 스탠포드에서 연구를 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요청하고 또 그들의 작업물에 대해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때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이해를 못해서 뻘소리 하는 걸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무언가 막연한 느낌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뭐, 뻘타라도 생각나는 것이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_-
이 때 유용한 테크닉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잘 모르겠는 부분, 생각이 막히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듣는 과정을 통해 양측 모두 느끼는 바가 생기기 마련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결과물에서 이런 부분이 이해가 어렵구나, 사람들은 의도와 다르게 이해하고 있구나 등등을 배울 수 있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보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건설적인 비판을 해줄 수 있다. 질문은, 꼭 좋은 질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바보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양측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질문은 그냥 속편하게 던지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언제나 나은 것 같다. 물론 생산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내공 있어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다. 걸음마도 안 뗐는데 뛰는 자세 고민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ㅋㅋㅋ
질문과 더불어 유용한 방법은 다른 객관적인 자료를 포인팅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많고 참고할만한 데이터와 페이퍼, 정보가 많은 사람이 유리한데, 보통은 교수님들이 그렇다. 같은 피드백을 주더라도 ‘내 느낌에는 좀 거시기한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A 가 쓴 B 논문을 참고하면 이런 점이 나오는데 그걸 적용해보면 거시기한 느낌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신빙성 있고 설득력 있다. 문제는, 나의 library 를 구축해 놓는 것. ㅠㅠ 이건 뭐 쉬운가…
비슷한 의미로 비유를 제시하는 것이 있다. 나의 입장을 견지하려 할 때 설득력 있는 비유를 제시하는 것은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이것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고 또 풍부해야 가능한 고급 기법인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비유를 꽤 괜찮게 한다고 느끼는 때가 가끔 있는데, 그건 한국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얘기할 때 뿐이다 –_- 영어로, 연구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그런 비유가 작렬하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결국 위에 나열한 것들을 잘 하기 위해서는 사고부터 달라져야 한다. 똑같이 페이퍼를 읽고 지식을 쌓더라도 어떤 의도로 이 지식을 습득하는가에 따라 나중에 이 지식이 쓰이는 용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페이퍼를 읽을 때 흥미로운 점, 다른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점 등을 정리해 놓으면 두번째 제시한 포인팅 스킬이 향상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나 생각이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보는 훈련을 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적절한 비유가 떠오를 수 있고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과정이고 또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나하나 깨우쳐 나가면서 배움을 헛되이 날려버리지 않고 나의 연구 습관과 태도에 적용시켜 나가다 보면 이 ‘수련과정’이 계속 되면서 나의 레벨도 올라가겠지. 아마도 이 레벨이 꽤나 쓸만한 수준에 도달하면 (또는 도달했다고 주위 사람들을 믿게 만들 수 있다면)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