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2010 은 HCI (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회이다. 지난 4월 10일부터 15일까지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에서 열렸고, 총 2500여명의 사람이 모였으며, 약 300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번 CHI 는 작년 가을의 UIST 에 이어 (당시 후기는 ‘UIST 학회를 다녀와서’ 포스팅에) 두번째로 간 미국 학회였다. 일상에 와닿는 주제들이 많고 비교적 이해가 쉬운 연구가 많은 HCI 이다보니 CNN, BBC 등의 메인스트림 언론에도 학회에 발표된 몇 가지의 연구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곳 참고)
Student Volunteer
나는 이번 학회에서 Student Volunteer 의 임무를 맡아 일을 했다. Student Volunteer 는 수백불 정도 되는 등록비를 면제받고 20시간 동안 학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일을 하는 흥미로운 자리이다. 주로 싼값에 학회에 오는 대신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170여명의 대학원생들이라고 보면 될듯. 의외로 5:1이 넘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고, 기본적으로는 추첨을 하지만 커미티 (논문심사 등을 총괄하는, 학회를 위해 임시로 구성되는 연구자 모임) 에 소속된 교수들에게는 공짜 volunteer spot 이 하나씩 주어진다고 한다. 우리 교수님에게 있는 spot 을 선착순으로 냉큼 찜해서 나는 편하게 오게 되었다. 아래의 빨간 옷을 입고 세션 모니터링, 키노트 강연 준비 도우미, 문지기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몸은 꽤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학회가 굴러가는 모습을 어느 정도 속속들이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사람들
작년 UIST 에는 한국인이 통틀어 7명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무려 100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학회를 찾았다. 미국에서 HCI 연구를 하는 한국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KAIST를 필두로 한 우리나라 학교와 삼성, LG 등의 한국 기업에서 많은 분들이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KAIST 산업디자인과에서만 20~30명 정도의 사람이 온 것 같았다. 서울대 CS 쪽에서도 새로 교수님이 오신 이후 visualization 관련 연구가 활발한 것 같았다. 두 편의 full paper 가 있었다. 하루 점심에 한국 HCI 모임을 했는데, 80명 가량의 사람들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의 HCI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학생들과 한국의 HCI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는, 산업계에서의 높은 수요를 바탕으로 학교들도 HCI 연구 역량를 보다 키우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그 역량이 대부분 디자인과 사용성, 모바일과 UX 등의 일부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 특히 내가 하고 있는 Computer Science 기반의 소프트웨어 툴이나 인터페이스, 그리고 Visualization 에 관한 연구는 한국에서 많이 생소하다고 한다. 분야의 태생적 특성 상 여러 분야의 균형과 조화가 필수적인 HCI 의 한 축인 이른바 system 연구를 하는 학교와 그룹이 보다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구동향
HCI 는 사실 너무 넓어서 어떤 세션은 들어가도 무슨 연구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고, 관심사가 전혀 달라 듣기 힘든 때도 있었다. 수확이라면, 최신연구동향을 알게 된 것과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HCI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갖고 있는가를 보았던 것. 가장 HOT 한 연구 트렌드 두 가지는 input technology 와 social computing 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CMU 박사과정 학생인 Chris Harrison 의 Skinput 은 사람의 몸을 입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장 많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Input technology 연구는 기존의 터치, 테이블탑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느낌이다. 또 하나 큰 흐름이었던 social computing 은 주로 Facebook 과 Twitter 를 이용한 다양한 발표를 비롯해, 사람들 사이의 정보와 관심의 공유를 촉진하는 다양한 기법들을 제시하였다. Social computing 은 아직도 새로운 연구주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은 흥미롭고 다양한 연구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SIG
다양한 연구관심사에 따라 워크샵 또는 SIG (Special Interest Group) 미팅이 논문발표와 함께 진행되었다. 나는 그 중 관심있는 분야인 End-User Programming SIG Meeting 에 참석을 했다. 이 세부분야의 권위자 및 학생들이 얼추 다 모이는 자리여서 최신연구동향을 알고 사람들 얼굴을 익히기에 좋은 자리였던 것 같다. 재미있었던 점은 SIG 의 진행방식이었다. 50여명의 참가자를 기존 멤버와 새로운 멤버로 나눈 뒤, 두 줄로 서로를 마주보면서 선 다음 (축구경기할 때 양팀 인사하는 것처럼) blind date 방식으로 한 사람당 2분씩 1:1 대화를 나누는 것. 25명의 사람과 각자의 연구관심사에 대해 1시간여동안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Twitter 시대
바야흐로 Twitter 시대다. #chi2010 와 각 세션 별 해쉬태그와 통해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스마트폰, iPad, 노트북에서 각 세션의 흥미로운 감상과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해쉬태그에 달린 트윗들만 죽 읽어도 어떤 발표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연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타(?)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용한 정보와 더불어 간단한 debate 가 벌어지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보다 가속화될 것이고, social computing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인만큼 그 활용에 있어서도 앞서나가는 학회가 되면 좋겠다.
후기
엄청난 규모와 다채로운 행사들, 대가, 교수, 학생과 산업계 인사들, 다양한 분야의 최신연구 등으로 가득찬 CHI 학회는 어찌 보면 축제의 장이었다. 저널보다 학회에 좋은 연구가 집중되는 분야의 성격상 사람들과의 교류와 정보와 연구동향 습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바쁠만큼의 충분한 가치를 주는 학회였다고 생각한다. 이 청중을 대상으로 내 연구결과를 선보일 기회가 여러번! 올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해야겠다.
p.s. 학회의 꽃은 아무래도 사람들과 친해지고 정보를 공유하는 Socialize 가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 좀더 자세하게 써볼 생각이다. 지난 UIST 학회 후기를 오랜만에 읽어보니 이 때도 socialize 하는 것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