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가 많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일들. 그 중에 나에게 정말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들도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것들도 있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것들도 물론 있다. 군더더기라 함은 본질과 구분되는 부차적인, 있어서 오히려 본질을 가리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군더더기가 군더더기인것은 아니다.
설거지를 막 끝내 깨끗한 싱크대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 채 남아 그릇이 한두개 더해질 때는 ‘아직 괜찮아’ 생각하며 설거지를 미룬다.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묻히고 한두개밖에 되지 않는 그릇을 닦고 헹구고 정리해 놓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그릇이 좀더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에 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일 것 같다. 이런 고민이 몇번 반복되고 나면, 더 이상 밥을 먹을 때 필요한 그릇이 남지 않는 정도가 된다. 이 때 설거지를 하게 되면, 처음 생각만큼 효율적이지 않다. 일단 좁디 좁은 싱크대에 가득 담겨있는 그릇들을 어느 정도 분류해 놓아야 닦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고, 때때로 이미 닦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헷갈려 여러번 닦을 때도 있다. 닦는 동안에도 다른 그릇이 차지하는 공간을 피해 닦다보니 좁은 공간에서 불편하게 일하게 되고, 헹구는 데에도 물이 튀기 십상이다.
처음 몇 개의 그릇밖에 없을 때는 군더더기라 하기엔 그다지 더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없앨 필요성도 그렇게 크지 않다. 쌓이기 시작하면, 군더더기가 아니면서 불편 없이 처리할 시점을 잡기가 참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시점을 지나 군더더기가 원래의 일에 차질을 줄 정도가 된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릇이 없다니…
그릇처럼 잘 눈에 띄고 마음 먹으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디 복잡하고 할일 넘치는 요즘 세상에 군더더기가 그뿐이겠는가. 컴퓨터 하드에는 언젠가 보겠지 싶어 하나둘씩 쌓아 놓은 각종 유용한 정보가 한 가득이다. 웹브라우저에는 수십개의 탭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점점 왼쪽으로 밀려난다. 즐겨찾기에도 이미 수백개의 링크들이 들어차 있다. 언젠가 가입해 놓은 여러가지 스크랩과 정보저장 서비스에도 각각 어느 정도의 처리하고픈 정보들이 그득하다. 트위터를 하다가 Favorite 처리해 놓은 것도 어느덧 수백가지, 처리율은 그닥 높지 않다. 책상에는 언젠가 읽겠지 싶어 사모은 책들이 이사 후 박스도 채 개봉하지 않은 채 누워있고. 관련 있어 보여 다운 받아 놓은 논문도 디렉토리에 태깅에 각종 분류를 거치고 나서도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MP3 파일도 국가별, 장르별로 대강은 들어있지만 언젠가는 한번 깔끔하고 찾아보기 쉽게 정리해야 할것만 같다. 디지털 사진이 모이기 시작한 지도 언 10년이 넘었다. 사진은 또 어떠한가.
자,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나에게 필요한 것들일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초에 모은 것들이긴 한데 말이지. GTD를 적용해 볼까, 나만의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서 아예 생기는 양을 줄일까. 조금씩이나마 처리할 시간을 할애해서 꾸준히 없애나가볼까. 효과적으로 정보를 분류하는, 생산성 높이기 관련 정보들 역시 군더더기 곳곳에 묻혀 있은지 오래다. 그냥 혼란한 마음이 이렇게 쏟아내고 나면 좀 나아질까 해서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