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쓰고있던 iPhone 3G 가 느리고 답답하고 불편한 점도 많아서 약정도 끝났겠다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안드로이드 쪽에서는 멋진 기능으로 무장한 2.2 버전이, 애플에서는 iPhone 4 이 질세라 발표되었다. 여러 면에서 애플의 독점적이고 독선적인 방식에 거부감을 최근 느껴서 안드로이드로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이 거의 확고했는데, 문제는 OS는 만족스러웠으나 마음에 드는 기기가 없다는 것. 프로요 키노트와 iPhone 4 키노트를 보고 결국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아직은 압도적 우위를 지키는 애플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왜 질렀는가에 대한 간단한 자기변명이고.. 이제 본론으로;;
6/24 출시를 8시간 앞둔 23일 저녁 11시 즈음 일단 동태를 살피기 위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Stanford Shopping Center Apple Store 에 찾아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오 이건 의외인데 하며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인증샷도 찍었다.
ㅉㅉ 애플도 이제 약발이 다한건가 싶을때쯤.. 또 아무리 그래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챌 때쯤 security 아저씨가 와서 4시 반부터 줄을 설수 있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폐쇄한다고.. 아 그래서 아무도 없었구나 쳇.
나온 김에 또다른 근처 스토어인 Palo Alto Apple Store 에 가보았다. 여기는 이미 5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트럭에 전원 연결해서 집에서 보는 대형 티비를 갖다놓고 낚시 의자에 앉아서 관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굳이 남보다 조금 일찍 폰을 사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다가, 왠지 모르게 나도 한번 애플 제품을 사기위해 밤새 줄을 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글을 쓰면서 자꾸 행동을 변명하게 된다-_-
어쨌든 집에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잠도 안오고.. 밤을 새며 노닥거리고 술도 한잔 하고 티비도 보다가 어느새 4시가 되었다. 대충 책 2권에 음료수에 노트북(미드 에피소드 5개쯤 담아서) 챙겨들고 별 생각없이 집을 나섰다. 4시 40분쯤 도착했고, 이미 꽤 차있는 주차장을 보며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가보니 앞에 50명 정도가 와있었다. 침낭에 낚시의자에 준비들이 꽤나 철저하구나;;
- iPhone line: most people in the line are already iPhone users. What makes them buy a newer iPhone for the second+ time? (엥 다들 또사는 사람들!)
- iPhone line: at least few hundreds of people now. Lucky to be in the first 50 or so. Technology becomes culture and style. (헉 수백명이네.. 아싸 앞쪽이다!)
- iPhone line: now an apple genius asked me which model I wanted today. I said 32. He said I’m all set. More people sitting down…
- iPhone line: stanford shopping center. Black curtain in front of the store just got removed. Can see inside now. http://yfrog.com/j6wr4fj
- iPhone line: mostly males in their 10 s or 20s. 15 behind me already!! What am I going to do for another N hours? 🙁
이런 트윗을 날리면서, 위룰 잠깐 해가면서, 미드도 좀 봐가면서, 주위도 한번 봐주면서, 책도 읽어주면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몇가지 기억에 남는것들.
- 애플은 커피, 주스, 과일, 빵 등을 준비해 두었다. 이거 좀 괜찮았음.
- Security 아저씨들이 사람들 줄서있는거 아이폰으로 열심히 동영상 찍더라.
- 킨들로 책읽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직원이 오더니 ‘We’ve got something better than that. Follow me’ 하면서 안으로 데려갔다 ㅋㅋㅋ
- 처음 10여명이 아이폰을 손에 들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스토어를 나설 때 사람들은 박수에 환호성을 보냈다.
- 줄서 있으면 10~15명 정도의 담당 직원이 하나씩 와서 고객과 악수를 하고 안으로 데려가는 시스템.
- Mobile Me 와 Apple Care, Bumper 등의 아이템 끼워팔기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직원들.
- 잠깐 비가 내렸는데 애플은 우산까지 구비해놓음.
오전 10시경 드디어 아이폰을 손에 들고 스토어를 나섰다. 때마침 잠시 소나기가 내려 야외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좀 안습인 상황이 되었다. 전체 과정 중 최고의 순간은 바로 스토어를 나와서.. 빗속에 기다리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지나가면서 흰 쇼핑백을 들고 걸어갈 때. 쏟아지는 부러움의 시선들. 나의 삽질이 빛을 발하는구나. 나는 묘하게 기쁘구나. 나는 오타쿠구나.
앞으로 또 할만한 경험인지는 좀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새로운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애플은 정말 뛰어난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전세계 사람들이 밤을 새가며 제품을 손에 넣는 순간을 꿈꾸게 할수 있는 침투력과 흡입력. 그 바탕에는 철학이 있다.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곳. 그러한 철학이 있기에 사람들에게도 애플의 제품은 각종 기능이 망라되어 있는 단순한 핸드폰, 노트북이 아니라 스타일이자 문화가 되었다. 일부 geek 들의 매니악한 열광에서 출발했을 작은 바람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50대 아줌마에게 아이폰이 핸드백만큼이나 중요한 아이템이라고 느끼게 하고, 또 백발의 노인과 출근을 포기한 샐러리맨이 수백명의 젊은이들과 밤새 줄을 서게 하는 태풍이 되었다.
기술이 문화가 되었다는 것은 그 파급력이 단순히 판매대수와 애플의 영업이익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생활, 사고, 소통방식, 속도와 연결에 대한 개념, 이 모든 것이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은 레스토랑에서 메뉴판 대신 휴대폰으로 Yelp 리뷰를 보고 메뉴를 결정하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폰카로 사진을 찍어 즉석으로 페이스북에 올리고, 포스퀘어로 자신이 몇월몇일몇시에 어디에 왔음을 나타내는 영역표시를 한다.
애플이 자신의 제품과 그 속에 담길 컨텐츠가 가져올 광범위한 변화를 미리 예측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건, 더 효율적인 생산라인, 최신기술의 집적에만 노력을 기울여서는 절대 이런 매력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 이 치명적인 ‘매력’이 제품 스펙과 가격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낸다는 것. 열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변화의 언저리에서 하이에나가 될수밖에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