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라는 묘한 감정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1) 겉으로 보기에 결과는 좋은데, 노력과 실력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는 경우 (내적인 죄책감)
2) 나의 내부의 과정과는 상관 없이 결과가 안 좋은 경우 (외적인 죄책감)
내적인 죄책감의 예로는, 시험공부 거의 안하고 갔는데 완전 열심히 한 친구보다 잘 봤을 때라든가 연구 미팅에서 내가 실제로 한 건 거의 없는데 완전 열심히 한 사람 취급 받을 때 등등.. 외적인 죄책감은 반대로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줄 때, 연애를 할 때 내 정성과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 때 등등.. 외적인 죄책감은 두가지 중 하나의 경우다. 결과가 안 좋기 때문에 굉장히 큰 민망함과 부끄러움으로 이어져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굉장히 애쓸 수밖에 없게 된다. 또 하나의 경우는 나는 해도 안 된다는 자책감과 자괴감으로 이어져 슬럼프에 빠지는…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적인 죄책감은 꼭 날로 먹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꼭 나쁜 것만은 아니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좀 뻔뻔해질 필요도 있는 것 같다. 항상 투자 대비 결과를 기대 이상으로 뽑아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실력이라 할 수도 있다. 또 PR 을 잘해서 멋지게 포장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괜찮냐는 것이다. 선을 넘지않고 최대한 이 죄책감을 ‘활용’하면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다고 칭송받을 수 있지만, 조금만 선을 넘으면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센스가 또 중요한 것 같다.
또 하나 흥미로운 측면은, 준비가 잘 안 되어있는 경우 오히려 실전에서는 더욱 겁없고 대담하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모르니까 용감할 수 있고 재치있게 받아칠 수도 있고 자신이 없으니까 더 집중해서 결과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준비는 열심히 해놓고 막상 실전에서 기가 빠져 결과를 망쳐버리는 경우를 왕왕 보는데, 이럴 때마다 참 안타깝다.
나는 비교적 이런 센스는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더욱 두렵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실제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를 받은 경우가 참 많았다. 그래서 외적으로 보기에는 놀것도 놀아가면서 참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 같은 좋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내적인 죄책감을 종종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상황들로 인해 내 자신이 더욱 나태해지는 것 아닐까 하는… 결국 가장 크고 중요한 결과는 그동안 꼼꼼이 쌓아온 내공과 실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뽀록이 터져서 대박날 수는 있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보면 결국에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또 이렇게 단순한 진리가 통한다는 것을 요즘들어 더욱 느끼면서, 오히려 안정감이 든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부도, 명예도, 인간관계도, 사랑도. 다만 내가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는 더욱 미쳐서 빠져들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접을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