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questions?”
수업이나 세미나, 저명 인사의 강연을 듣다 보면 우리나라와 확연하게 차이나는 것이 질문의 양과 질이다. Computer Science 학문에 있어 가장 이론적인 분야라 할 수 있는 Algorithm 과목은 흔히 일방적인 강의로 흘러가기 쉬운데, 거의 문답/토론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거의 150명 가까이가 수강하는 HCI (Human-Computer Interaction) 과목도 교수님이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면서 수업이 진행된다.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하려는 학생이 많아서 교수님이 더 이상 의견을 받지 못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Interactive Web Application 과목의 경우도 웹 관련 기술 동향을 살펴보는 딱딱한 강의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질문과 이의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세미나의 경우도 강연과 질의응답이 거의 1:1 비율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건대 고등학교, 한국에서의 학부를 걸쳐서 질문이라는 것을 별로 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질문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많은 이 곳의 강의와 talk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이 간극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질문’과 이 곳에서의 ‘질문’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나는 질문을 하는 일이 나의 이해부족이나 무지를 드러내는, 약간은 부끄러울 수 있는 행동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사람의 말을 잘못 이해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거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나를 비웃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의 질문은 모르는 것을 묻고 답하는 기능 이상이다.
질문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의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질문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의 관심사를 표명함으로써 내가 관심있어 하는 내용에 대해 ‘맞춤형 강의, 세미나’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물론 1차원적인 질문만 하면 논의가 늘어지거나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질문 잘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려서부터 쌓아온 훈련의 결과가 아닐까.
건설적이고 공개적인 문답을 통해 1:1의 단순정보 전달관계는 다:다 의 토론으로 변화하고, 자연히 그 자리는 활기찬 분위기를 띈다. 답을 듣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듣는 재미 또한 못지 않다. 특히 외부인사 초청 세미나 등에 가면 교수님들이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수님들 중에는 유독 ‘질문의 고수’들이 많은 것 같다. 정말 현재 논의에 가장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어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면 강연자는 오히려 질문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기분을 느낄 것 같다. ‘고수’들의 질문을 듣고 있으면 답이 너무 기다려진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할지 기대감을 갖게 되면서, 나도 미국식 talk 분위기에 조금씩 녹아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아직은 내가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분위기가 비교적 익숙하고 주제도 예상가능한 수업의 경우 매 수업마다 한마디 정도는 하고 나오는데, 대형강의나 세미나는 사실 많이 어렵다. ‘내가 뻘소리하는 것 아닌가’, ‘발음이 좀 불안해’ 등의 우려를 씻어내지 못한 탓이리라. 좀더 ‘깡’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실 별 일이 아닌데 말이다 ㅋ
질문은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많이 던질수록 우리 모두에게는 이익이다.